일주가 무엇인가
사주 여덟 글자 중 태어난 날의 두 글자가 일주예요. '나'를 가리키는 글자와, 그 글자가 앉은 자리가 여기서 나옵니다.
일주
'무슨 일주는 어떻다'는 글, 인터넷에 정말 많죠. 성격이 이렇다, 팔자가 저렇다 딱 잘라 말합니다. 그런데 자평진전 같은 옛 자료는 정반대를 말해요. 날짜 두 글자만으로는 그런 걸 말하지 않는다고요.
일주는 태어난 날의 두 글자입니다. 앞 글자는 나 자신을 가리키고 뒤 글자는 내가 앉은 자리를 가리킵니다. 이 두 글자는 그 사람의 결, 곧 무엇을 편하게 여기고 무엇을 불편해하는지를 보여 줍니다. 그러나 잘살고 못삶이나 직업 같은 것은 일주가 정하지 않습니다. 그것은 사주 넷이 함께, 그리고 운의 흐름이 정합니다. 그래서 '무슨 일주는 어떤 팔자'라는 말은 두 글자에게 여덟 글자의 몫을 지운 말입니다.
사주는 태어난 해·
앞 글자는 '나' 자신이에요. 사주를 볼 때 모든 걸 이 글자에서부터 셉니다. 뒤 글자는 내가 앉아 있는 자리고요. 이 자리는 배우자 자리로도 봅니다.
일주는 모두 예순 가지예요. 열 개짜리 바퀴와 열두 개짜리 바퀴가 함께 돌아 예순 번 만에 제자리로 오거든요.
그 사람의 '결'이에요. 무엇을 편하게 여기고 무엇을 어색해하는지,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.
앉은 자리 속에는 기운이 두셋 더 숨어 있어요. 그 숨은 기운을 나를 기준으로 부른 이름이 십성입니다. 나에게 힘을 주는 자리인지, 내가 다뤄야 할 자리인지, 나를 눌러 세우는 자리인지가 여기서 갈려요.
같은 자리를 다른 눈으로 보면 십이운성이 됩니다. 내가 그 자리에서 한창때인지 저무는 때인지를 사람의 한살이에 빗대 열두 마디로 나눈 거예요.
잘살고 못삶이요. 옛 자료가 이걸 분명히 못 박습니다. 일주는 결을 보여 줄 뿐이고, 되고 안 되고는 사주 전체와 운의 흐름이 정한다고요.
직업도 아니에요. 직업 쪽은 태어난 '달'을 중심으로 봅니다. 앉은 자리 하나로 논하지 않아요.
격도 아닙니다. 격은 태어난 달을 중심으로 가리는 것이라, 일주론은 격을 가리는 데 아예 안 씁니다. 결이 어떻다는 이야기와 격이 섰나 무너졌나는 층이 다른 이야기예요.
그래서 '무슨 일주는 돈복이 있다' 같은 말은, 근거로 삼는 자료가 하지 말라고 한 걸 하고 있는 셈입니다.
예순 일주마다 앉은 자리에 무엇이 들었는지, 십성·
그게 '당신에게' 무슨 뜻인지는 안 실었습니다. 뜻은 나머지 여섯 글자와 운을 함께 봐야 나오거든요. 두 글자만 놓고 뜻을 말하면, 바로 앞에서 하지 말라고 한 그 일이 되고요.
신살은 자평진전 격국법 밖의 이론이에요. 참고로만 적고 판정에는 안 씁니다. 어디서 온 말인지 밝히지 않으면, 맞는 말이어도 근거 없는 말이 되니까요.
사주 여덟 글자 중 태어난 날의 두 글자가 일주예요. '나'를 가리키는 글자와, 그 글자가 앉은 자리가 여기서 나옵니다.
일주는 그 사람의 결을 보여 줘요. 무엇을 편하게 여기고 무엇을 어색해하는지,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요.
일주론은 잘살고 못삶을 가리는 도구가 아니에요. 되고 안 되고는 사주 전체와 운의 흐름이 정합니다.
결은 보여요. 무엇을 편하게 여기는지 정도요. 다만 성격이라 부를 만한 건 태어난 달과 나머지 글자가 함께 만듭니다. 두 글자만으로 단정하진 않아요.
아니요. 직업 쪽은 태어난 달을 중심으로 봅니다. 옛 자료가 '앉은 자리 하나로 직업을 논하지 말라'고 못 박아요.
좋은 일주, 나쁜 일주는 없어요. 일주는 결을 보여 줄 뿐이고 되고 안 되고는 사주 전체와 운이 정합니다.
같은 자리를 다른 눈으로 센 거예요. 십성은 그 자리가 나에게 어떤 구실을 하는지를 보고, 십이운성은 내가 그 자리에서 한창때인지 저무는 때인지를 봅니다.
자평진전 격국법 밖의 이론이에요. 참고로만 적어 두고, 격을 가리는 데는 쓰지 않습니다.